기도하다가 내 안에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기로 결심하였다.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위로가 있으며 평안과 기쁨이 있다.
물론, 삶이란 그리 쉽지 않다.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움들이 많이 있고, 내 머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들도 많이 있다. 물론, 내 마음 속에는 그런 어려움들이 해결되길 솔직히 원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서 이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까?
예수만이 오직 유일한 위로시며 영원한 소망되신다.
그렇다면 이 영원한 위로와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거리에 나가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전한다.
어떤 사람은 과격하게 전한다.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몇몇 사람들을 지하철에서 볼때, 거리에서 볼 때, 어찌 보면 무섭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비단, 그런 구호를 외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예수를 전하는 데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쳐다 보는 눈빛이 너 그렇게 살면 안돼. 너 지옥의 길로 가고 있어 뭐 이런 식의 내재된 협박이 느껴진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제한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꼭 잘 못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싫다. 내가 평가하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좌우지간, 이런 생각들이 예수를 떠올리게 했으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믿도록 전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마태복음을 쭉 넘기면서 살펴봤는데,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증거했던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에 대한 메세지였다.
이 메세지의 어감은 어떠했을까?


너희 회개 안하면 다 멸망할꺼야 이런 식의 메세지였을까?

4:23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4:24

뒷 구절들을 살펴 봤을 때, 나는 쉽게 예수님의 메세지의 초점을 잡을 수 있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에 대한 메세지의 강조점은 뒷 부분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천국이란 어떤 것인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이 고쳐지는 그런 것에 관련되어 있다. 23절...

즉, 예수님의 메세지는 세상에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에 고통받고 힘들어 하던 사람들에게 위로함을 주는 메세지였던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게 예수님이 전하셨을 것 같다.

 
세상 가운데 어려움과 고통들, 병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여러분들. 이제는 더이상 여러분들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영들에서 벗어나고, 회개하여 내게로 오십시요. 여러분들은 이제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있는 힘듬과 어려움들이 내게 나누어질 때, 나는 여러분들의 약함들을 고칠 것이고 천국의 소망을 줄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나아왔을 때도
예수님은 8:3절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셨다.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할 때,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8:7
세리와 죄인들이 왔을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 것처럼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9:12,13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을 만지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딸아 안심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9:22
특히, 예수님은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과격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 화 있을진저로 시작되는 부분들...
23장에 나온다. 그 대상은 누구냐면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약하고, 힘든 자들, 죄인들을 돌아보고 위로할 생각은 안 하고 정죄하고 자신들은 위선적인 행동을 보였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전도 언어는 바로 사랑의 언어이셨다.
힘들지? 내게 오렴. 내 딸아, 내 아들아. 괜찮다. 어려운 점들을 내게 말하렴 내가 고쳐주겠다.
이런 표현이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주변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세상 가운데 많이 힘드시고 어려우시죠? 힘내십시요.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힘들고 어려운 점을 고쳐주실 겁니다. 예수님의 위로와 평안이 넘치길 기도하겠습니다.
아마, 이런 표현들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과격한 표현을 들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믿는 다고 하면서도 위선을 행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지 못하고 꾸짓는 사람들이다. ^^;;;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거꾸로 되어 있는 현실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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