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9장 24절에서 27절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KJV, NASB 26절뒤, 27절 앞에 but 이라는 표현으로 잇고 있다.
따라서, 24-26절까지 내용은 한 문맥이며, 27절은 독립된 한 문맥이다.
오늘은 복음에 대한 응답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복음을 들은 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우리의 삶 가운데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을 잊지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상황 자체에 신경을 기울이느냐고 정작 중요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잘 못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Face down
오늘은 두 번째로 우리가 복음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Overflow)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문제점은 복음을 들은 후에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복음이 무엇인지 그것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더 풍성히 얻는 삶과는 거리가 있던 삶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이정도 예수를 알았으니 다른 삶은 뭐가 중요하겠어 머물러 있는 삶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 가운데 더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인생 흘러가는대로 믿었으면 됐지 뭐가 중요해? 라고 그냥 모든 것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우리에게 주실 그 놀라운 축복과 승리와 기쁨이 있는지를 절대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이 세상을 살다가 의미없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cm 송이 있습니다. 이거 하다가 안되면 말고 그러다가 라라라라라라라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자칫 그러기가 쉽습니다. 예수 믿으면 되지, 내 삶 가운데 생명력이 없어도 상관없어. 예수 믿으면 그만이지... 뭐 적당히 신앙 생활 하고 안 되면 말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것에 대해서 걱정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복음이 주는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오늘 본문을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 성경 KJV나 NRSV 버전을 보면 27절이 but으로 시작됩니다.
but 뒤의 것이 가장 중요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but 앞의 것은 but뒤의 내용의 다음번에 올 중요성을 갖습니다.
but 뒤의 내용은 지난주에 이야기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but 앞의 내용은 더 풍성한 삶을 위한 인생의 목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한국 교회는 목적이 이끄는 40일 등의 세미나를 통해 인생의 목적을 찾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원 이후 풍성한 삶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그 놀라운 은혜, 그 놀라운 삶의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풍성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상을 받도록 달음질 하라,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라고 이야기할 때 여기서 상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상을 이야기하면서 천국에서 하나님이 상 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산 것대로 진짜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면류관을 주고, 어떤 사람은 밀짚 모자를 주고 이런 식으로 천국 체험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볼 때 위험한 것은 무엇이냐면 guessing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냥 상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겠거니라고 유추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앞뒤 문맥을 따라서, 앞 뒤 내용을 따라서 계속 읽으면서 왜 바울이 여기서 갑자기 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이 내용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여기서 바울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상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위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교사 생활을 했는데, 교사 생활을 하면 별별 일이 다 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제가 나중에 선생님 찾아와서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에게 그랬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무슨 물질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정말 가르침대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절실히 체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값없이 체험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대가 없이 그냥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이 복음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자신에게는 다른 물질적인 어떤 것보다 기쁨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3절에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자기 이야기를 여기까지 하면서 바로 이어서 너희도 상을 받도록 해라.라고 말하며 25절에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바로 너희라는 표현을 쓰고 우리라는 표현을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계속 문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에게 저의 삶을 나누는 것도 이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것을 통해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는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공동체 가운데서도, 조 모임 가운데서도 우리는 나의 삶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파장을 미치며 그리고 나중에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은 바로 바울이 누렸던 그 풍성한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승리자의 상급이며 그것 자체가 상인 것입니다.
제자가 잘 된 것을 보며 같이 기쁨을 나누는 것 말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제가 당신 덕분에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그 기쁨을 나누는게 얼마나 크겠습니까?
당신 때문에,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당신 때문에 복음을 알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자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나누는 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진정한 상의 의미입니다.
바울 서신들을 살펴보시면 바울의 상의 개념이 무엇인지 더 명확해 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
바울은 면류관이 무엇이냐라고 말하고 바로 너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태, 미치도록 인정받기 위해 달려가던 자신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자유를 주셨고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고 그토록 애썼습니다. 밤낮으로 자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그들의 성장을 보며 기뻐하고 잘못된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바울의 개인적인 고백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바울에게 있어서 그 면류관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처럼 사람들이 체험하고 더 풍성히 삶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그 은혜를 체험하여 그 기쁨이 충만한 것이 복음을 들은 자로서 첫 번째 응답이라면 두 번째 응답은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줘서 그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Facedown과 overflow의 삶입니다.
예수님도 그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에 승천하시면서 18절부터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엄청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쁨되는지 아십니까?
사도행전에서도 우리는 두 번째의 응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성령이 임하시자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새로움이 그들을 덮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쁨이 충만하여져서 2장 45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복음에 참여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분의 임재를 구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임하시고 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쁘신 목적을 향해 달려나가도록 그리고 그 기쁨을 같이 나누도록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기쁜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것은 기쁨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복음의 기쁨이 충만해 지고 더 풍성해지고 확장되는 것을 체험하며 살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내 삶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로워지고 기쁨으로 가득한 것도 얼마나 참 소망이 됩니까?
그런데 더더구나 내가 느낀 이 자유로움과 하나님의 생명력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어서 자유가운데 기쁨 가운데 소망 가운데 자유로와지는 것만큼 또 기쁜 것은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어집니다.
소망 없다는 자들이 점점 살 소망을 가지고 자유와 기쁨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런 기쁨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기쁨이 확장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땅에 대해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하나 하나 정복해 가면서 기뻐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냥 이대로 됐지하고 안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이 사라진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호수아 12장에 보면 갈렙의 나이 85세에 이르러 아낙 자손이 사는 그 산지를 아무도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아마 갈렙 정도의 나이였으면 가만히 있어서 누군가가 할 것을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자기가 나서서 그 땅을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준비하고 계셨으니 내가 가서 얻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운데 땅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가 그것을 받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향해 선포하며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비하신 복음의 그 기쁨들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우리는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극도로 절제하고 열심히 준비합니다.
왜입니까? 올림픽에서 상을 받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며 꿈에 부풀어 있기 때문에 절제하게 됩니다.
여러분! 올림픽에 참여하는 사람이 스스로 절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기쁨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절제할 수 있지 절제해야 하는 강제 가운데 절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런 논리를 본문 가운데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영광을 위해서도 그렇게 절제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사는데, 하물며 우리가 얻을 상은 영원한 상이다.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기쁨만큼 큰 상이 어디있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기쁨으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장의 즐거움보다 즐거움을 유예하셨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부끄러운 일도 많았지만 예수님의 그 영광과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그 영원한 사귐을 위해 예수님은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그 기쁨을 얼마나 기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들과 누릴 영원한 교제 말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담임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적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누리기 보다는 즐거움을 미래로 연기시켜 놓자. 더 나은 즐거움을 위해 이 시간을 기대함으로 보내자.
청년부 회장인 *** 형제를 보면서 참 제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많이 자라는 것을 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 형제와 기도회를 하면서 *** 형제 가운데 좋은 점은 선포하는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렇게 될 것을 바라보면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에 대해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ktf는 쇼를 하라고 하지만
믿음은 쇼가 아닙니다. 선포는 쇼가 아닙니다.
선포는 믿음입니다. 그렇게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생각하기에 신앙인으로 못나고 부족한 모습이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가꾸며 내 삶 가운데 승리를 주실 것을 꿈꾸며 선포하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직장 가운데 학교 가운데 가정 가운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더라도 하나님 붙들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놀랍게 부어주실 승리의 순간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한 분이 동생 아프다고 기도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더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포를 하셨더라고 너도 선포를 하라고.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처럼 가면 됩니다.
이 땅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복음이 심겨졌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되고 생명을 얻게 되고 그 기쁨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 목사님의 메시지가 파워가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승리의 경험들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체험한 사람들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영향력을 확장시키시고 나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실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이기고 또 이깁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더 빼앗기는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를 경험한 사람은 점점 영향력이 커집니다.
여러분 그것을 기대하십시오.
주님은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선포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여러분들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땅을 얻도록 놀랍도록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 승리를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나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실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할 것을 내가 미리 바라보며 선포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고백하는 기도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모두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그 영원의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삶 가운데 생명을 더욱더 풍성하게 주시고 영원을 향해 사는 그 기쁨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흘려보내서 우리 모두 기쁨을 나누게 되는 그 것.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응답입니다.
찬양- 보좌로부터 물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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