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묵상 | 4 ARTICLE FOUND

  1. 2008.06.06 40일 동안의 패배적인 일상 속에서.
  2. 2008.06.05 한 사람
  3. 2008.06.02 사무엘상 15:1-15
  4. 2008.03.28 묵상하는 아름다움.


사무엘상 17: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사무엘상 17:16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군대 앞으로 40일을 아침 저녁으로 나와 도발하며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음을 볼 수 있다. 24절에 보면 골리앗이 나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하는 모습을 또한 볼 수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현실의 모습이 나타난다. 골리앗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위용에 사로잡히고 능히 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그 현실에서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골리앗을 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으니 얼마나 이스라엘 군대들은 심신이 지치고 힘들었을까?
 우리의 일상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어쩔때는 힘든 일들에 사로잡혀서 40일과 같은 긴 시간동안 패배자의 모습 속에서 살아갈 때가 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지녔던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에서 끊임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도망가는 모습들을 오랜 시간동안 경험할 때 절망감의 그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절망의 늪에서 누가 건져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 짓기 다반사이다.

 이 때, 다윗이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쳐서 의욕을 잃고 쓰러질 때 다윗이 그 전쟁터에 나타나게 된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더 이상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나보다라고 느끼던 예수님이 오시던 바로 그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고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고 계신다. 그 계획이 다윗과 같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일수도 있고, 예배일수도 있고, 우리 일상의 어떤 계기를 통해서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절망의 상황 속에서 건져내신다.

 예수님 오시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절망 가운데 사로잡혀 희망없이 지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희망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고, 재림이 늦추어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점점 놓아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절망이 깊어지는 그 시간들 가운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 법이 없으셨다. 역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희망의 계기를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40일간의 긴 시간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용기를 갖는 사람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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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biblical things 2008. 6. 5. 20:13
사무엘상 17:1-11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우리의 삶을 성경은 전쟁터와 같이 비유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쉬운 세상이 아닌 것이다. 날마다의 싸움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골리앗이 이끄는 블레셋 군대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의 대치 장면을 볼 수 있다.
골리앗은 도발하면서 나와 대적할 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골리앗과 싸울 이 한 사람은 군대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이 한 사람이 나가서 이기면 대적을 쳐 부수고 자유 가운데 살 수 있지만, 이 한 사람이 질 경우에는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며 속박될 운명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의 각 영역에서도 사단은 우리에게 도발하고 있다. 나와 싸울 이 한 사람이 있는가라고 냉소섞인 목소리로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사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골리앗과 싸웠던 이 한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용감한 모험을 감행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전쟁터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용기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관자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좌절하지 않고 독수리 새 힘 얻어 날개침 같이 비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의 권세들이 나와 싸울 한 사람이 있느냐?라고 도발할 때 내가 여기 있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영에 충만하여 능히 적들을 쳐부술 사람들은 과연 어디있는가?
 승리를 주시는 주님! 자유를 주시는 주님! 모든 권세 가운데 뛰어나신 주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p.s.
 아마, 우리는 이 한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이 있다. 그 분은 바로 대장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숨어서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대장 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단의 권세를 끊으셨다. 이제 우리의 싸움은 우리 자신의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나가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시고,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다.
 다윗도 결국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볼 때, 다윗의 그 모습에서 성령 더불어 강력하게 세상 가운데 구원의 빛이신 자신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이 내 편이신데, 천하의 누굴 두려워하랴! 예수로 인하여서 넉넉히 우리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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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5: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15: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15: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15: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15:7 사울이 하월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기 아말렉 사람을 치고 15: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 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15: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5: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오늘 아침 묵상한 것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1. 리더쉽의 근원과 리더로서 해야 할 점
 왕은 대단한 지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왕이 되면 아무래도 자신이 다스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보고 책임감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우쭐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있는 영역에서 어떻게 보면 왕과 같은 리더쉽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꼭 진짜 왕 같은 큰 다스림의 영역 가운데 있는 리더쉽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내가 소속되어 있어서 영향력을 작더라도 미치면 그것을 우리는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 위험한 점은 자기가 다스릴 영역만 생각해 보다 정작 자신의 리더쉽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자신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15:1절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이 왕이 된 것이 여호와께서 기름부으셨고, 이스라엘 백성 위에 왕으로 삼으셨다고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 가운데서나, 선교단체에서나, 교회에서나 혹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리더쉽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까?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15:1절 하반절에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사무엘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왕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하기 쉬운 일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곳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상기시켜줬던 것은 왕이긴 하지만, 왕의 지위가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는지를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아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가를 우리 삶 가운데 살펴보실 때가 있습니다. 15:3절에 바로 사울에게 하나님은 사울의 중심을 살펴보기 위해 하나의 명령을 하십니다.

2.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대하는 것
 15:2절에 보면 아말렉의 이야기가 나오고 15:6절에 보면 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자의 운명은 멸망당하는 것이고 후자의 운명은 멸망의 상황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두 민족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겐 사람은 똑같은 상황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대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대하고 대적하는 것이 본질적 의미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대적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에게 선대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응하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를 더 확장해 보면,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실상 약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땅이 없어서 이리저리 떠돌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는 길을 막아서며 대적했다는 것은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성품과도 대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좌우지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가운데 따르며 살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나 아니면 어떤 결정을 할 때 그냥 내 생각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를 기도하면서 결정하고 주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나 쉽게 우리는 우리의 생각대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때가 많습니다.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조언을 하는 위치에 있을 때에도 그냥 내 생각대로 말하는 것 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조언하는 것 하고는 영향력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3. 리더의 핑계 vs. 책임감
 우리는 이 본문에서 두 명의 리더를 볼 수 있습니다. 한 명은 사울이고 한 명은 사무엘입니다. 둘 다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두 분야에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사울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사울 :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자기의 눈에 보기 좋았던 가치있게 보여졌던 아말렉의 전리품들을 취한다음, 13절에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12절에 자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리품을 취한 것이 자기의 뜻이 아니라 15절에 백성이 그러했다고 책임전가를 백성에게 합니다.
 리더가 사역에서 무언가 잘 되어 가고 있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부 소위 사역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강좌 자체보다 더 크게 내고 광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내용 보다는 저자 이름을 더 크게 홍보하면서 광고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자 자신이 그런 일을 기획하지는 않았겠지만은 저자의 순수함을 손상시키는 행동의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우선시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냐면 기독교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좋은 자료를 자기만 가지고 있으려는 폐쇄성입니다. 자기가 어떤 면에서 뛰어나고 지혜를 가져서 능히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지혜가 있다면 그것이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된 부분도 일부 있지만-또한 자신 또한 누군가가 무료로 베풀어 줘서 얻게 된 것도 많습니다. 가령, 음악적으로 뛰어난 경우에도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준 측면도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왔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면에서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지위에 있게 된 것인데, 자기가 가지고 자신의 자료를 공유하려는 데 너무도 인색합니다. 변명도 제가 보기엔 정말 우스꽝스럽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자료가 있으면(물론, 자기 저작이라는 것을 전제해서 말입니다.) 공유하는 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 주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더 확장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음도 저작권료를 받고 예배도 돈 받고 예배에 참여시키는 행동들 제 눈에는 썩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외국에 있을 때 좋은 자료가 있을 때 많이 나누어주는 모습을 경험했던 저는 일부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료의 폐쇄성에 대한 태도를 보며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과연 좋은 자료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기가 그런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한국의 기독인 분들이 자신의 자료를 공개해 주시고 사용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감격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특히, 블로그 등을 통해 좋은 자료들을 공개해 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잘못했다고 느낄 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만큼 바람직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진실되느냐 안 되느냐에 묶여서 회개 안하느니보다는 회개하는 게 낫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도가 바리새인적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것보다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분이 ENOUGH입니다. 따라서 그 분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부족함이 정결케 됩니다. 예수를 자기의 태도보다 더 신뢰한다면 나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정결케 되어 받아진다는 것을 믿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 : 11절에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파하면서 온 밤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리더를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서 정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상대를 위해 밤을 세워 부르짖고 안타까워 하는 일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이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사무엘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많은 도전이 됩니다. 비판을 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 앞에 머물면서 내가 비판할 사람을 위해 안타까운 모습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국민을 위해 진정한 정책을 행사하는 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고 많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한 다치고 있습니다.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럴 때 그냥 악감정에서, 확 리더들에 대해 안 좋은 마음이 드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금 침착히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은 마치 사울의 잘못이 자기의 잘못인양 생각하였습니다. 진정한 리더란 남의 잘못을 자기의 잘못으로 여기고 같이 회개하는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자기가 회개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잘못도 같이 품고 회개하는 모습 이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리더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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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자는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하기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참 복된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성경 Message에 보면 주야로 묵상하다를 chewing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껌을 씹듯이 계속 씹으면서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는 것. 그것이 바로 묵상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큰 특권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는 항상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인도하셨는지 고백들이 넘쳐납니다.
특징들이 있다면 삶에서 어떤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그런 작은 삶의 순간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제게 고정된 습관중의 하나는 자동적으로 어떤 일들을 보던지 간에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얼마나 제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정말로 많은 말씀을 하시고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고백을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듯이 주께서도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듣고 새기고 또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시며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닮아가게 바꿔 놓기 시작하며 성령의 인도따라 살게 됩니다.

그 삶들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요.
인생에 어려움들이 생기지만 그 어려움과 상관없이 삶 속에 주를 경외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평생 주를 알아가고 주와 동행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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