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성경 해석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귀납적 해석법이며

두번째는 연역적 해석법이 아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영적 해석법입니다.

귀납적 해석법은 성경을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서

성경이 쓰여진 역사적인 상황 가운데 이런 문장이, 단어가 왜 쓰였는지, 성경의 앞 뒤 문맥을 따져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성경을 잘못해석하지 않도록 해 주는 가장 안전한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 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만 보고 잘못 해석하곤 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자신이 설정한 하나의 가설을 뒷받침 하는 걸로 쓰죠.

예를 들어, 누군가 평소에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과 교제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구절은 그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걸로 쓰일 수 있겠죠...

많은 이단이 이런 식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먼저 자신의 생각의 큰 부분을 정해놓고, 성경의 구절이나 말을 짜 맞추어서 자기 생각이 성경에 맞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거죠.

전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도 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인용해서 믿지 않는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제대로 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보죠.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HNR)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HNR)



윗 구절들을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왜 그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바로 우상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많은 고린도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이끄는 우상 숭배 사상으로 믿는 자들을 이끈 경우가 많았고 그 위험의 소지가 있어서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 그 구절이 나온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누군가가 아주 악한짓을 하게 만드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죠.



이것을 좀더 알기 위해선 시대 상황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역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대의 시를 이해하려면 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 민족시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고린도 교회의 그 때 당시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온갖 우상 숭배와 성전에서 성적 행위를 통한 worship 행위들... 그런 것들이 범람했습니다. 그리고 권장되었죠. (간단히 적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을 셋팅해 놓고, 앞뒤 관계를 따져 해석해야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먼저 두고 구절을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성경 자체를 읽고 상황을 파악하여 이해하는 게 정상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편지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상황이나 나와의 관계 등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생각하지, 단순히 글 자체만으로는 오해하기 쉽죠...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게 귀납적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 대해서 또 쓸 기회가 있으면 쓰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가장 훌륭한 교사입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부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예로, 다니엘서를 보면 현실에 대한 부분과 영적인 부분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직관적이어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 대한 부분들이 신약에 많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죠. 이것이 바로 구약이 단순히 지나간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입니다. 과거일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숨은 진주 찾기와 같은 일과 비슷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많이 찾아내셔서 풍요로운 말씀 가운데 있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성경방법은
귀납적 방법에다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또 추가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biblical thing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험해 보는 것  (0) 2006.08.28
권위에 대해서  (0) 2006.08.27
성경 공부에 관한 글을 시작하면서...  (0) 2006.08.20
믿는다는 것...  (0) 2006.08.20
나라와 가정 가운데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  (0) 2006.07.22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