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biblical things | 136 ARTICLE FOUND

  1. 2007.09.01 선악과 사건...
  2. 2007.08.14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자.
  3. 2007.08.13 마태복음 팔복
  4. 2007.08.10 편견
  5. 2007.08.02 내려놓음?

오늘 모 형제랑 이야기하는 도중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있어 적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랑의 관계 아래 들어간다는 것은
책임성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사랑의 태도가 아니죠.

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과 특별한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별히 헌신되고 서로를 돌아보아 줄 결혼 관계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받게 되고 후회 하는 일도 가끔씩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이혼률이 높은 이유를 살펴보면
성격차라든가, 배우자의 불륜등의 이유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즉,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된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지금 있는 배우자 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생활들이 더 나에게 자유를 주고 더 행복한 생활을 줄텐데...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선악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눈을 돌리게 되는 어떤 선악과와 같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성 있고 구속되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선악과와 같은 것으로 향하면서 우리가 결단을 할 때
관계는 깨어지게 됩니다.

이혼 같은 문제도 그렇습니다.
다른 상황, 다른 상대에게 눈을 돌릴 때, 그 상황이나 다른 상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쪽으로 우리의 마음을 옮길 때 가정이 깨어집니다.
그러면 그 깨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혼으로 인하여 자녀들의 상처들 괴로움들 같은 것 말이죠...
그것은 파괴적인 결과, 죽음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먹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 관계어서 벗어나 다른 좋아보이는 그런 쪽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거죠.
결국 그런 것들이 죽음과 같은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더 큰 사랑이었죠.
죽음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으니까요...
계약 관계, 책임성의 관계 자체를 더 초월한 아가페의 사랑의 단계...
정말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호세아서를 보면 서로에게 구속된 사랑의 관계에서 더욱더 확장된 사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사랑
고전 13장의 사랑에 대한 속성들을 보여주는 것들....

아무튼, 감사하고 놀랍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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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어떤 이상적인 것을 설정하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갖다 맞추는 경향들이 많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고 힘없는 사람들을 돌아보신다 이런 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모든지 이런 틀에 맞춰 하나님을 바라본다.
말씀을 봐도 다 그런 틀에 맞춰서 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지나치게 강해, 민족을 향한 사랑과 민족을 위한 쪽으로 치중하게 되고 그에 따라 말씀을 또한 해석한다.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여성신학이니 토착화 신학이니 이런 종류의 용어들이 정말 많다.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나쁘게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 틀안에 갇혀서 자신의 이상에다가 하나님을 갖다 붙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틀안에 신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갖다 붙히는 일을 범하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을 겸손한 마음으로 알아가는 것
난 이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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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화천 모교회에서 학생부 설교 내용 요약(주일마다 마태복음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12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 부분은 굉장히 유명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팔복에 대한 부분이죠.
마태복음 5장부터는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 대해서 나오고 있는데, 특히 마음의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쓰여진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로마의 압제를 당하던 시대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로부터 고생을 당하고 있었고, 또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로부터 율법주의에 비추어 비난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민중들이 경제적으로 살기도 굉장히 힘들었고, 거기다가 세리 계급들은 그나마 경제적으로 겨우 먹고 살던 민중들의 돈을 수탈하였습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의 삶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며, 굶주려도 그런 굶주림을 해결 받을 수 없었던 일들도 많았겠죠.

더군다나 그들을 더욱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종교적인 행위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 민중들을 더욱더 힘들게 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보고, 너희들은 죄를 많이 지어서 이런 병에 걸렸다라고 비난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한테, 왜 그렇게 헌금도 많이 내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고, 자신들은 종교적으로 굉장히 잘 산다라고 잘난체하고 힘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많이 보였던 바리새인들의 모습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민중들이 가졌던 아픔과 상실감, 자괴감, 소망없음 등은 말할 나위 없겠죠.

아무도, 병 걸려서 죽어가는 사람들, 가난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때 바로 예수님은 다가가셔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 겉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의를 행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너희들이 진짜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팔복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고 위로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담겨 있는 곳입니다.
(팔복은 우리가 그런 상태가 되면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상황과 마음의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향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위로하시며 힘 주시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심령이 가난하면 복이 있다라는 메세지가 아니라 이미 심령이 찢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희가 정말 복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시는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우리 자신을 위장하고 가식적으로 보이길 좋아합니다.
마음에는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으면서도 교회 나가서 내가 이만큼 봉사하니 난 하나님을 참 사랑하지 않아? 내가 이만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잘 섬기니 얼마나 난 겸손한 사람인가? 등의 것들을 은연중에 보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면서 마음의 진실함이 무엇보다도 복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마태복음이 특별히 마음의 상태를 지적하고 있죠.

팔복은 또한 마음에 상처 받고 힘들고 이리저리 치인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왔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천국의 메세지를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힘든 사람들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을 때, 그들의 삶에 더이상 소망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들은 예수께로 나왔습니다.

오늘날, 많은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 올 때,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안으시고 위로하시면서 그들에게 복이 있을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진실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예수 앞에 내어 놓을 때 예수님은 형식적인 열심을 보이는 사람보다 예수님은 그들을 더욱더 진실되다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그들의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손해를 보면서도 의로운 일들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 왜 그렇게 바보같이 행동해?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든지 자신의 것을 잘 챙겨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난 속에 자신이 가진 것 없고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도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천국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우리의 모습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를 이해한다 말씀하시고,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예수 안에 영원한 위로와 소망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여도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과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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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biblical things 2007. 8. 10. 18:54
오늘날 언론보도를 보면 그것이 진실이고 공신력이 있어 보이는 것처럼 믿겨 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한 기사는 기자들이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인격적인 교제나 정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를 어느 한편만 부각시켜 쓰기 때문에 그 정보를 접하는 우리는 편견을 가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좋은 태도는 그 기사가 보도한 그 사람에 대한 부분은 저런 일부분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싶습니다.

청년사역으로 유명한 S교회의 J목사님에 대한 것도 한 번 적어 보고자 합니다.
J목사님에 대한 보도가 기독언론 사이에서 여러 번 나왔었습니다. 그 골자는 그 목사님은 지나치게 성공주의적인 신앙을 주장하며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여러분은 성공할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젊은 계층일수록 동기부여를 집어 넣어주는 말을 많이 하면 자극을 받게 되어 끌리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을 보면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기도 쉽지 않고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기도 어렵기 때문에, 성공의 방법들을 신앙의 관점에서 제시한다는 것은 기독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좌우지간, 그런 보도를 여러번 접한 저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이분은 성공주의적인 신앙관을 취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약간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은 솔직히 성도들의 성공에 관심이 많다. 특별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바란다.라는 이야기였고
제 마음속에 그 말이 많이 남았습니다.

목사라는 입장에서 가난하고 힘든 성도들이 이 땅에서도 어느 정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성공주의라는 다소 부정적인 말로 표현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진정성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인격적인 교제가 중요하며 알아가는 노력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인격적인 교제가 더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매체들이나 인터넷 공간들이 서로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게 하지 않고 단순히 공식처럼 사람들에 대해 한 부분에 의해 단정짓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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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biblical things 2007. 8. 2. 21:09

요새 기독교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은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내려놓음, 자기 비움, 낮아짐 등등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이런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간증들이다.
자기가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그에 걸맞는 지위를 가질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내려 놓고 조금은 힘든 길을 가고 있는데, 그것이 참 축복이다라는 등의 비슷한 메세지들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모습들이 꼭 나쁘다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내려 놓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 놓는 것이 내려 놓음의 의미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욕심을 비우고 다른 좋은 일을 하고 섬기는 것이 참다운 내려 놓음인가?

내가 생각하는 내려 놓음의 본질은 이것과 틀리다.
내려 놓음이란 내 힘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로 내려 놓음의 삶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보기에 힘든 곳에서의 삶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 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다 보니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내려 놓음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은연중에 우리의 의식 속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복 주시고 크게 쓰시리라 하는 기대감이 있다.
그래서, 오지로 가야 할 것 같고, 지금의 삶을 내려 놓고 뭔가 신앙 좋아 보이는 것을 전임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생각들에 사로잡히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 신앙 좋다는 어떤 기독인들을 보면 직장 생활 가운데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나 전임 사역자들을 부러워 하기도 한다.
그것들이 마치 내려 놓음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사역자로 헌신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냥 일상 생활 가운데 사는 것을 답답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자기가 권리포기를 못하고 현실에 안주했다고 한다.
즉, 내려 놓음을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내려 놓음이라는 잘못된 개념들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자신의 현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며 방황하게 만드는 예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려 놓음이란 내가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내려 놓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적고자 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눅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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