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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6 분열의 영!
  2. 2008.05.16 소망의 말씀.
  3. 2008.05.16 말씀은 성육신해야 한다.
  4. 2008.05.15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5. 2008.05.15 사회적 참여와 영적 영향력

분열의 영!

biblical things 2008. 5. 16. 16:15

 요새 한동안 영적으로 공격을 많이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뉴스를 봐도 제가 생활하는 주변에서도 온통 분열의 영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영적인 실체를 분명히 알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력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성경관이 아니고, 세력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분열의 영!
이 영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대적해야 할 영적 세력중에 하나입니다.

1. 한국 사회
- 요새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정책이 세워지길 원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소들(미친소라고 불려지지만 마음이 썩 좋지 않습니다. 소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소한의 동물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항생제를 맞고, 분뇨틈에서 쓰러져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인간의 죄악이 큰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에게 비이성적인 정책이 취해지지 않고,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동물이나 사람이 이용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많습니다.
- 분열의 영은 꽤 간사합니다. 어떤 문제를 이용하여 문제 해결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인간 자체에 대해서 공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와 맞지 않는 견해를 조금이라도 비추게 될 때에는 그 상대방 사람에게 인신적인 공격이 들어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치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만나는 사람 가운데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대화하는 게 무서울 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분열의 영이 조장하는 현상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한국 교회
- 교회 가운데 이단 문제가 많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교회역사상으로 이단 문제가 어느 한순간도 잠잠했던 적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문제는 이단 문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들로 인해 교회 내에서 서로 간의 불신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 자기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만 보여도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희생되는 교인들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어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몸 안의 지체들이, 가족들이 이제는 서로를 의심하는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분열의 영이 만드는 이 모든 것 가운데 우리는 기도로 이 영을 대적하며 승리 해야 할 것입니다.


- 영적 전쟁에 대해서.
 영적전쟁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역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영적 전쟁을 너무 추상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예수 이름으로 이 곳 가운데 사단의 세력을 결박한다. 이런 식으로 자동 반응할 때가 있는데, 그것 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실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무언가 알지 못하게 영적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분별하고 그 영을 결박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의 방법입니다.

 어떤 모임에 가시든간에, 아니면 신문을 보시던, 뉴스를 보시던 간에 영적인 실체에 대해서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영이 우리의 삶에 영역가운데 다스리도록 선포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더더욱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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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말씀.

biblical things 2008. 5. 16. 15:52

 말씀을 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메세지에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들이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생각보다 쉬운 사회는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해서 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개념은 상대적이니까요. 돈이 많아도, 어느 정도 살기 좋아졌다하더라도 그걸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살다보니, 그리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보니 여러 모로 역효과들이 나타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정말 여러 곳에서 듣습니다.
 교회에서만 듣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매스컴을 통해서도 가정에서도 온통 무엇을 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많이 듣습니다.
 이 메세지의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유달리 다른 나라로 머리를 식히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 사진기를 달랑 하나 메고 여행 가고 싶은 마음, 이 마음들이 우리에겐 많은 것 같습니다.

 소망의 말씀!

 이것은 평생 붙들어야 할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혹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삶에 지치고 절망하고,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삶에 영원한 위로와 소망이 된다는 메세지는 다시금 사람으로 하여금 힘을 갖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또다시 일방적인 must의 메세지를 날릴 경우는 그 압박감이 상당합니다.
 설교는 성육신해야 한다고 아랫글에서 적었듯이, 우리는 한국 땅에 사는 사람으로 이 땅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략적으로 믿음의 말씀, 소망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어떤 집회든, 어떤 예배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촉촉한 단비가 내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의 소망을 품고 이 땅 가운데 다시금 용기를 내어 살며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 가운데 사는 메세지를 말입니다.
 사람을 품지 않고서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 사랑의 마음을 담지 않은 메세지는 죽은 메세지와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의 요새 기도제목 중 하나입니다.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갖게 되고 웃음 지을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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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다보니 말씀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자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삶 가운데, 모든 순간 마다 예수를 떠올리고 그 분을 묵상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설교 가운데 현실과 분리된 예화를 만들어내지 않고 현실에 뿌리박은 예화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더욱더 깊이 생각하자! 항상 기억하는 문구입니다. 물론, 이 문구는 히브리서에 있습니다.

 오늘은 말씀의 성육신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이 땅 가운데 사셨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한 가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실제로 사시면서 직접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시면서 가르치셨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세지가 강력했던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을 잘 아시고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해야 그들의 삶을 얽매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 있을지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이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메세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말씀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메세지가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세지가 되겠습니까?

예로, 신학생들에게나 가능한 신학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성육신이니, 칭의니, 성화니 이야기해도 그것은 뜬 구름 잡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분의 메세지는 참 깊이가 있지만, 청중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관념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의 메세지는 너무 쉬운 수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어떤 회중들에 대해서는 그 메세지가 들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회중들의 수준에 맞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전하는 사람이 회중들의 수준으로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겸손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쉬운 메세지로 바꾸면 마치 자기 자신이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또한 너무 생각이 많아도 좋은 메세지를 전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한번에 변화를 주려는 생각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메세지가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메세지를 전하더라도 회중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전달하는 메세지는 근본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성육신하여 주의 뜻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의 원리는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적용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비밀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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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아노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교회 청년 중 한 명이 연주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연주를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보를 외우기 위해서, 또한 감정을 음에다가 담기 위해 수없이 연습을 하면서 때로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고, 답답해서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고 해야 하는 길이기에 묵묵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며 연주회에서 준비한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은 참 보람되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면서 때로는 무언가 발전이 없는 것 같고, 답답함이 느껴지고 그냥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중요한데, 생각보다 쉬운 과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는 인내를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당시에는 쓰고 힘들지만, 분명 우리의 삶 가운데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결과까지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 땅 가운데 사는 삶,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패할까봐 돈을 땅에다 묻어둔 종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찌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산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과 지향적인 것은 사람들의 심리겠지만, 결과보다는 과정 가운데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의 사진은 연주회 사진과 상관없는 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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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전 글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 특히 가정생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사회적 참여의 중요성을 언급해 보고자 하겠습니다.
믿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위해선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필요합니다.
주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아,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천시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그저, 특정 계층들을 위한 예수님이구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사회적으로도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셨는지, 어려운 자들을 돌보셨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성품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 나타난 행동들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무작정적인 비난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만큼 세상의 빛으로 기독인들이 살지 못했던 모습들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 가운데 작지만 소중한 실천을 개인의 삶 가운데, 사회적 참여 가운데 흘려보낸다면 왜곡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벗어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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