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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3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
  2. 2008.06.19 시편 4편
  3. 2008.06.14 요나단과 세례요한
  4. 2008.06.06 40일 동안의 패배적인 일상 속에서.
  5. 2008.06.05 한 사람

어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그 용돈을 쓸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모아서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써 달라구요.

그 돈은 근원은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자기가 쓸 수도 있었는데, 더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아버지에게 부탁드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권리포기입니다.
권리포기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받은 용돈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둘째, 내게 쓰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더 가치 있는 목적에 쓰는 것입니다.

흔히, 권리포기를 말하면서 둘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있습니다.
권리포기를 하면 채워주신다 이런 논리만 강조할 때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급을 받을 때 어떤 생각을 먼저 할까요?
나의 수고로움의 대가를 직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월급은 직장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직장이 나에게 월급을 주었다고 생각할 때, 나의 삶은 직장에 매인 삶이 되고, 직장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타협도 하게 되고 신앙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직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이 조금 더 여유가 있어지고 생각보다 종속된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직장 생활을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제 그 대가를 하나님으로터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선택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만 쓸 것인가? 아니면,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쓸 것인가?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에서 자신도 하나님으로 부터 능히 받은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니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라고 말합니다.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그것을 자기를 위해서 쓰기 보다는 복음을 위해 더 사용하기를 원해서 사례를 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이것이 권리포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해서, 그것을 나를 위해 쓸 수 있지만
복음을 위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하겠다.

권리포기의 개념에는
생명을 살리는 일, 즉 복음이 반드시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면
복음을 위한 권리포기 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권리포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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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편

biblical things 2008. 6. 19. 10:00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시편 4편에는 사람들에 대한 대조의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2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3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경건한 자들입니다.

2절을 보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사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거은 무엇인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까? 영광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하면서 삽니까?

오늘 유달리 저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에게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3절에 하나님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악된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택하셨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기를 하나님이 바라실까요?
4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는 삶입니다. 구별되는 삶입니다.
5절에 의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우습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무슨 우리의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되는 것처럼 여길 때가 많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경 말씀도 말씀으로 부터 들을려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주장을 드러내기 위한 근거로 성경 구절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의 동기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로부터 공급받고 배우려고 하는지,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을 갖다 붙이지는 않는지...

사무엘상 24:1-22절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어리석게 기회를 포기한 사람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최고 관심사는 왕이 되거나 사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께 있어야 하고 다른 어떤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그 분으로 인하여 기쁘고 그 분을 향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정초되어 있을까요?

분명 주님 앞에서 계수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나의 삶 가운데 얼마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는지.
그 기쁘시게 하는 삶은 고린도전서 3:10-15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하여 그 위에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으로 사람을 양육하고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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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0:24-42
24. ○이리하여 다윗은 들녘에 숨어 있었다. 초하루가 되었을 때에, 왕이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았다. 
25. 왕이 언제나 하듯이, 벽을 등진 자리에 앉자, 요나단이 왕의 맞은쪽에 앉았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26. 그런데도 그 날은,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울은 다윗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몸이 부정을 타서 아직 깨끗하여지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27. 그런데 초하루가 지난 다음날, 곧 그 이튿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새의 아들이 어제도 오늘도 식사하러 나오지 않느냐?"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다윗이 저에게 베들레헴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29. 자기 집안이 베들레헴 성읍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 형이 다녀가라고 했다고 하면서, 제가 자기를 아낀다면 자기 형을 만나게 해 달라고, 저에게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임금님의 식탁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이 사생아 같은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아이와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나 너를 낳은 네 어머니에게 욕이 될 뿐이다. 
31. 이새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 빨리 가서 그를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 
32.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그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기에 죽어야 합니까?" 하고 항의하니, 
33. 그 순간, 사울이 요나단을 찔러 죽이려고 창을 뽑아 겨냥하였다. 그제서야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34. 요나단도 화가 치밀어 식탁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모욕한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달의 이틀째가 되던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35. ○그 다음날 아침에 요나단은 어린 종을 하나 데리고 들녘으로 나가서, 다윗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36. 거기에서 요나단은 자기가 데리고 온 어린 종에게 "너는 막 달려가서 내가 지금 쏘는 화살을 주워 오너라!" 하고 시켰다. 어린 종이 달려가자, 요나단은 그의 머리 위로 화살을 쏘았다. 
37. 요나단이 쏜 화살이 떨어진 곳으로 그 어린 종이 달려가자, 요나단이 그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아직도 덜 갔다! 화살이 더 먼 곳에 있지 않느냐?" 
38. 요나단이 그 소년의 뒤에다 대고 계속 소리쳤다. "빨리 빨리! 서 있지 말고 빨리 달려!" 요나단의 어린 종은 화살을 주워다가 자기 상전에게 바쳤다. 
39. 그러나 그 어린 종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요나단과 다윗만이 그 일을 알았다. 
40. 그런 다음에, 요나단은 데리고 왔던 그 어린 종에게 자기의 무기를 주면서, 그것을 들고 성읍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41. 그 어린 종이 성읍 안으로 들어가니, 다윗이 그 숨어 있던 바위 곁에서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면서 세 번 큰 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함께 울었는데, 다윗이 더 서럽게 울었다. 
42. ○그러자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잘 가게. 우리가 서로 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잊지 않도록 하세. 주께서 나와 자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자손과 자네의 자손 사이에서도, 길이길이 그 증인이 되실 걸세." 다윗은 일어나 길을 떠났고, 요나단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요나단의 삶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사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대적하는 위치로 나아옴에 따라 사울의 자손이 아닌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요나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저 같으면 막 화도 나고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그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항상 백성을 생각하며 다윗을 도와주며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태도가 아버지로부터의 공격도 받게 되는 어려움도 생기게 되었지요. 결국은 전쟁터에서 죽게 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달랐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요나단은 부요한 집에서 자랐지요. 다윗은 도와 줄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요나단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뜻에 따라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하나님 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나단의 처지에서 보면 그다지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을 상황에 놓이기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는 것을 알고 다윗을 도우면서 삽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요나단의 모습속에서 또한 세례 요한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예수를 드러내고 자신은 그저 돕는 위치에서 살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과 요나단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이러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삶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던, 직장 생활을 하던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너무나 쉬운 것 같습니다. 나보다 저 사람이 왜 이런 점에서 뛰어나고 나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내가 노력을 많이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왜 난 이런 면에서 대접받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심리적 상황 가운데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도 하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를 죽기 까지 섬기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기억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머릿속으로 이해는 되어도 가슴으로 내려 와서 우리의 행동적인 응답을 하기란 참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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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사무엘상 17:16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 군대 앞으로 40일을 아침 저녁으로 나와 도발하며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음을 볼 수 있다. 24절에 보면 골리앗이 나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하는 모습을 또한 볼 수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현실의 모습이 나타난다. 골리앗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위용에 사로잡히고 능히 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그 현실에서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골리앗을 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으니 얼마나 이스라엘 군대들은 심신이 지치고 힘들었을까?
 우리의 일상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어쩔때는 힘든 일들에 사로잡혀서 40일과 같은 긴 시간동안 패배자의 모습 속에서 살아갈 때가 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지녔던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에서 끊임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도망가는 모습들을 오랜 시간동안 경험할 때 절망감의 그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절망의 늪에서 누가 건져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 짓기 다반사이다.

 이 때, 다윗이 등장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쳐서 의욕을 잃고 쓰러질 때 다윗이 그 전쟁터에 나타나게 된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더 이상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나보다라고 느끼던 예수님이 오시던 바로 그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고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고 계신다. 그 계획이 다윗과 같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일수도 있고, 예배일수도 있고, 우리 일상의 어떤 계기를 통해서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리고 절망의 상황 속에서 건져내신다.

 예수님 오시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절망 가운데 사로잡혀 희망없이 지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희망을 가졌던 사람도 있었고, 재림이 늦추어지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점점 놓아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절망이 깊어지는 그 시간들 가운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 법이 없으셨다. 역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희망의 계기를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40일간의 긴 시간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용기를 갖는 사람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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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biblical things 2008. 6. 5. 20:13
사무엘상 17:1-11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우리의 삶을 성경은 전쟁터와 같이 비유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쉬운 세상이 아닌 것이다. 날마다의 싸움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골리앗이 이끄는 블레셋 군대와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의 대치 장면을 볼 수 있다.
골리앗은 도발하면서 나와 대적할 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골리앗과 싸울 이 한 사람은 군대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이 한 사람이 나가서 이기면 대적을 쳐 부수고 자유 가운데 살 수 있지만, 이 한 사람이 질 경우에는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며 속박될 운명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의 각 영역에서도 사단은 우리에게 도발하고 있다. 나와 싸울 이 한 사람이 있는가라고 냉소섞인 목소리로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사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골리앗과 싸웠던 이 한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용감한 모험을 감행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전쟁터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용기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관자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좌절하지 않고 독수리 새 힘 얻어 날개침 같이 비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의 권세들이 나와 싸울 한 사람이 있느냐?라고 도발할 때 내가 여기 있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영에 충만하여 능히 적들을 쳐부술 사람들은 과연 어디있는가?
 승리를 주시는 주님! 자유를 주시는 주님! 모든 권세 가운데 뛰어나신 주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p.s.
 아마, 우리는 이 한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한 사람이 있다. 그 분은 바로 대장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숨어서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대장 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단의 권세를 끊으셨다. 이제 우리의 싸움은 우리 자신의 싸움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나가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시고,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다.
 다윗도 결국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볼 때, 다윗의 그 모습에서 성령 더불어 강력하게 세상 가운데 구원의 빛이신 자신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이 내 편이신데, 천하의 누굴 두려워하랴! 예수로 인하여서 넉넉히 우리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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