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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3 결혼과 영적 성장 1
  2. 2008.05.13 고전 6장 12-20절
  3. 2008.05.13 인격 또는 성품의 중요성.
  4. 2008.05.10 기도
  5. 2008.05.01 다양성 속에 존중받음.


흔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지나치게 영적인 것에 치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에 치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특히, 영적인 부분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많이 살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그 범위 내에서만 인간은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을 해 줘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 가운데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결혼은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성하고 거룩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결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왜곡된 개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있어서 헌신적인 사랑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더욱더 알고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아이에게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도 이보다 더 깊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반대로, 아이도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사랑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며, 영적인 원리,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깨어지고 자식이 학대 당하는 상태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에 대한 바른 관념을 갖겠습니까?

그래서, 가정이란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향해 존중하고, 서로를 향해 사랑과 신뢰에 바탕을 두며 희생과 섬김이 있을 때, 예수님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지를 더욱더 깊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없고, 외도를 한다거나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섬김 희생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남녀가 만나서 하나님 안의 아름다운 교제를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남녀간의 하나됨 이상의 영적인 원리와 연결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가도록 남녀가 가정을 이루도록 만드셨고,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도록 만드셨고, 세상 가운데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 어떤지를 알도록 이 세상 가운데 두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영적인 것이다 육적인 것이다라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몸은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을 날마다 알아가는 데 힘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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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 NIV 성경 번역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다 유익하지 않다, 그것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라는 바울의 논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점)
어떤 것이 우리에게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유익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의 지배를 받는 것들은 없는지?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하면, 가령,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 뭐 이런 것이 그닥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 많이 보면 유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될 수도 있겠죠. 운동도 마찬가지겠구요. 운동 중독에 걸린 사람도 보았습니다. ^^;;;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중략)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 이것도 12절과 같은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라는 단순화된 논리, 몸의 한 부분이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몸도 또한 성적으로 자유롭게 관계를 가져도 되는 것으로 그것이 몸의 존재이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몸은 음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를 위하여 있고, 주도 몸을 위하여 계신다라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14. 하나님이 주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이 부분은 몸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위해, 몸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도 몸의 부활이 같이 이루어졌듯이, 우리도 부활의 상태에서 몸을 입게 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생각해 볼 점)
우리의 몸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요? (14절부터 20절 사이에)
1. 부활에 참여한다.
2. 성령의 전이다.
3.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4. 값으로 사신 것이다.
5.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몸에 대한 관념과 많이 틀리지요.
창조시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아주 정성들여 만드셨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성육신 하셨지요. 몸은 하나님의 성령을 담는 그릇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육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분들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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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나님 안에서 사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잘 변화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격 또는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더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경우에도 열정은 앞섰지만, 예수님을 잘 부인하고 용기가 없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오순절 성령 이후에 강력한 설교를 회중 앞에서 했지만, 할례를 받지 않던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있다가 할례받은 무리들이 오게 되니까 성급히 자리를 떠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에게 책망을 받게 된 내용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울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지요. 의욕이 앞서고 열정이 앞서다보니, 자기랑 생각이 틀린 사람들을 잘 품는다기 보다는 같이 사역을 하지 못하고 떠나 보낸 경우를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나이가 더 들고 하나님 안에서 점점 변화되게 되었을 때, 이전과는 볼 수 없었던 인격적인 성숙함을 보이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며 사랑으로 감싸 안았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변에서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으레짐작으로 읍박지르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정말 답답하고 미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참고 있자니 속상하고 앞으로 만나지 말까 생각하자니, 예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것이고. 이런 과정들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것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전하는 메세지가 사람들에게 강력한 도전이 되길 원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는 것은 메세지를 전하는 사람의 인격적인 면에서 감동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메세지에 도전받았다 할찌라도 나중에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떠함을 알게 될 때 받는 상실감이 큰 것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로 부족한 사람을 쓰셨다고 해서 내가 인격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다 다루신다라고 하는 논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자체가 정당화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 사람의 인격을 보면서 메세지를 판단하려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의 중심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되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 세상가운데 우리의 몸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외적 행동이 사람들에 의해서 판단되고 내적인 부분을 추정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깊게 깨달은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더라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의 인격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작지만 시도하는 것 하고, 내가 이렇게 부족하더라도 주님이 쓰시는데, 부족한 부분의 영향력은 주님이 책임지시겠지 이렇게 말하는 것 하고는 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에 동감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 생각은 즉, 영적인 것만 소중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는 영지주의적 사상에 일부 물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지만, 영육 간의 분리의 사고는 우리 가운데 너무나 크게 존재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서도 너무나 소홀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영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혹은 우리의 외적인 행동이 복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께 변화되길 원하며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켜 가는 것이지, 은혜가 모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정당화 시키는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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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biblical things 2008. 5. 10. 01:02

하나님께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지 여러 날들이 흘렀습니다.
제 안에 점점 기도가 자연스러워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같이 나누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넓은 마음을 갖기 못했던 모습에서
점점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압박감이 있습니다.
이것이 외식적인 기도이면 어떻하나? 이 기도가 기복적이면 어떻하나?
정작 이런 압박관념 때문에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괜히 내 기도, 나의 필요에 대해서 기도하면 죄책감이 느껴지고
뭔가 광범위하고 큰 기도가 없을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점점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오히려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생각보다 외식이니,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수준에 머무느니를 논할 단계는 아닐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다보면, 점점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금의 우리의 기도속엔 적다할찌라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부족함을 아시고 덮으시고 주의 뜻을 알도록 변화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칼빈이 이런 이야기를 했더군요.
신자들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정결케 된다.
우리가 기도를 잘못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가 정결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동안 기도에 대해 위와 같은 생각을 해 왔었는데,
칼빈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듣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과 우리의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의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가 어떤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보좌 앞에 그리스도로 힘입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무엇보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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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의식적으로 사람들을 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또는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 내가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

성경을 볼 때도 이런 의식이 작용합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등을 보면 본받아야 하고
하갈, 이스마엘, 에서 등을 보면 본받지 말아야 하겠다라는 생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안에 있는 개성적이고 다양적인 것이 무시되거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해야지 하는 기준에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절망 가운데 사로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리는 신앙의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끊임없이 긍정을 외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교회 봉사에 몰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고...
혹시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또는 이런 모습이 신앙의 표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듣게 되는데,
부모가 기대하던 이상적인 자식의 모습을 지니지 못해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녀들을 보게 되고
교회에서 기대하는 이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지니지 못한 것 같아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하나님은 과연 사람을 차별하셨던가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존중받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라는 것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그 과정속에 아브라함 등의 우리가 신앙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로 사용되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선택은 과연 그 사람들의 어떤 행동적 뛰어남이었을까요?
그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구속적인 인류를 향한 사랑의 선택 중 일부였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선택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과정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연으로 보여지는 과정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버려졌던 것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뛰어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도 실체를 멀리서 희미하게 보았다라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멀리서 보고 기대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구약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명백히 보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약간의 비약을 더하자면,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나 하갈 같은 사람이나 그닥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신약으로 가면
이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명백히 압니다.
따라서, 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죠.
우리가 좋게 보던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우리가 안 좋게 보던 하갈과 같은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제는 모두 다 하나님 안에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이런 구분들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격이 이러하든, 저러하든 신앙의 바람직한 표준이 이러이러한 모습을 지녀야하든, 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며 상처주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한 가족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성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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