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에서 느낌표를 봤습니다.
베트남을 찾아가서 어떤 소녀의 심장병을 고쳐주려는 이야기인데
참 감명깊었습니다.
그 소녀는 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심장병을 갖고 산다네요.
항상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감명을 줍니다.
왜냐면 생명을 살리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도처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죽음의 그늘에서부터 벗어나 생명을 주는 모든 활동은 가치있고 참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프리덤 라이터스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로 다른 인종끼리의 갈등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치며 남을 죽이는 환경 속에서 자랄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생존이 가장  큰 그들의 당면한 문제인 그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이라는 것과 친한 그들.
그들에게 한 여교사가 삶의 희망을 줍니다.
죽음이라는 절망을 생명의 희망으로 바꾸어 줍니다.
그들이 그 교사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변하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하신다는 의미의 구절이죠.
어둠의 세력은 죽이고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죠.

저는 이런 생명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은 제 주변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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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성경의 모든 부분들이 정말 분명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약간은 제한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어떤 계층에게는 그 말씀이 정말 많이 다가오겠지만은,
어떤 계층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해될 수 없는 부분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이 어떤 의미에서는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성경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해석에서 열려져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명확한 답변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일이지만
구원의 소식을 성경을 통해 모든 계층에게 전달하려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자기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위험이 따르며
하나님의 천국의 확장성을 제한하는 한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태까지 배웠던 것의 고정관념에 묶여 있지말고
성경을 직접 붙들고
성령 하나님의 조명아래 기도하면서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성령의 빛 아래서 말씀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며
각자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을 일깨워 주실 것이다.

사람을 다양하게 만드시고, 그 고유한 개성을 주신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도 각자에게 가장 맞게끔 그러면서도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계시하실 것이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다른 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사랑의 광대하심을 다시한 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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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취재파일 4321을 보다가
나이드신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 방송 됐다.
그 취재 동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생활비를 벌고자 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였는데,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건을 다루면서 또한 그 세대들의 인생을 다루었다.

본인들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배우지도 못하고 그 산업화의 물결속에서 악착같이 돈을 버시고 자식들을 위해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병에도 불구하고 돈 벌이도 되지 않는 한달에 단돈 20만원 정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시는 그 할머니들...
그 돈들을 또한 자신을 위해서 다 쓰지도 않고 자식 이름으로 꼬박꼬박 적금을 드시는 그 할머니들...

이러한 모습들이 한국의 어머니들에게서 나타나는 사실이 못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부모님에게 효도는 커녕 부담만 드리고 자식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부모님은 저를 위해 그 분들의 인생을 희생하셨는데, 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 분들은 본인들이 먹고 쓰는 것들도 아까워하시면서 자식들을 위해 퍼주시는데, 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제 인생도 제대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며,
저만의 이기적인 생각과 결단의 길이 제 주변에 많은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참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
이 분들의 삶을 위로하시고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들이 늘 넘치게 해 주시구요,
건강하도록 붙들어 주세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더욱더 힘 주시고, 그들의 희생의 삶, 섬김의 삶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값진 삶인지
많은 자녀된 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항상 감사하게 하시고, 더욱더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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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 형제랑 이야기하는 도중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있어 적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랑의 관계 아래 들어간다는 것은
책임성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사랑의 태도가 아니죠.

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과 특별한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별히 헌신되고 서로를 돌아보아 줄 결혼 관계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받게 되고 후회 하는 일도 가끔씩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이혼률이 높은 이유를 살펴보면
성격차라든가, 배우자의 불륜등의 이유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즉,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게 된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지금 있는 배우자 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생활들이 더 나에게 자유를 주고 더 행복한 생활을 줄텐데...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선악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눈을 돌리게 되는 어떤 선악과와 같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성 있고 구속되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선악과와 같은 것으로 향하면서 우리가 결단을 할 때
관계는 깨어지게 됩니다.

이혼 같은 문제도 그렇습니다.
다른 상황, 다른 상대에게 눈을 돌릴 때, 그 상황이나 다른 상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쪽으로 우리의 마음을 옮길 때 가정이 깨어집니다.
그러면 그 깨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혼으로 인하여 자녀들의 상처들 괴로움들 같은 것 말이죠...
그것은 파괴적인 결과, 죽음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먹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 관계어서 벗어나 다른 좋아보이는 그런 쪽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거죠.
결국 그런 것들이 죽음과 같은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더 큰 사랑이었죠.
죽음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으니까요...
계약 관계, 책임성의 관계 자체를 더 초월한 아가페의 사랑의 단계...
정말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호세아서를 보면 서로에게 구속된 사랑의 관계에서 더욱더 확장된 사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자신을 내어 주신 그 사랑
고전 13장의 사랑에 대한 속성들을 보여주는 것들....

아무튼, 감사하고 놀랍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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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주 존경하는 모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맞이했습니다.
정년퇴임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사역할 수 있었고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면서 울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는가를 돌아보셨습니다.

전,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뼈저리게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 또한 평소 그런 걸 너무나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길을 간다고, 너무나 희생을 하는 제 주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너지고, 어찌할 수 없어 하나님만을 불러봅니다.
만약 저 혼자만 고생하는 것이라면 그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그래 보지만, 괴로운 건 괴로운 것입니다.

난 정말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 고통 절망 속에서 방학이 끝날 무렵 저녁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천국 소망이 갑자기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웃음이 피식 나왔습니다.

고통 가운데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요?

상황이 어렵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더라도
예수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하나님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좌우지간, 변함없이 이 두가지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약한 것이 자랑이 됩니다.
예수가 자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덮고 나는 사라지고 그분의 은혜안에 제가 있습니다.
그분만이 드러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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