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하고, 컴퓨터도 없다 보니
거의 인터넷도 못하고, 글 쓸 환경이 잘 안되는군요.

요새 공부하느라 머리를 많이 굴렸더니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개념이 떠 다니고 상상과 논리 사이의 여행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AND

오늘 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어떤 한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전화 있느냐고 물으면서 나한테 전화를 집에다 걸어달라고 말하면서
아파서 그런다고 가족한테 데리고 와 달라고 전해달라고 하셨다.

전화를 걸었는데,
아마 자식 쯤 되는 것 같은 데 무지 퉁명한 목소리로 묻는 것이다.
"노인네가 아파요? 얼마나 아파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노인네라는 말이다.

자기 부모보고 노인네라고 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쥐어박고 싶다.
존경의 말로 대하진 못할 망정
늙었다고 그렇게 비아냥거리고 낮춤식의 말로 쉽게 말하는 사람들...
지네들은 안 늙나.
더더욱 황당 했던 것은 그냥 성의없이 전화를 툭 끊어버리는 무례함.
최소한 정중하게 말이라도 하던가.

왜 이리 버릇없고 막되먹은 사람들이 늘어가는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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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차를 운전하고 갈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혼자 차를 몰고 갈 경우(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나)만큼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때도 드문 것 같다.
차를 몰고 화천으로 내려가던 중 들었던 생각이
요새 경제가 어렵고 그래도 옛날보다는 낫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신문에 학생들이 점심 준비해 올 형편이 못 되어 수돗물로 배를 채웠느니 하는 기사들이 종종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기사는 찾아 볼 수 없다.
왜냐면, 국가의 무료 급식 지원 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렵더라도 밥을 굶어야 되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은 옛날만큼은 많지 않다.

예전엔 컴퓨터 성능이 지금과 비교해 봐야 아무리 떨어진 것이라도
있는 것 자체로 부러움을 받았었는데
요새는 컴퓨터 없는 집 드물고, 인터넷 안되는 집 별로 없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 수준은 옛날보다 높아졌고
복지 수준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러다보니 자꾸 우리들의 눈은 잘 사는 특정 계층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감사가 없어지고 우리의 처지가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때가 많이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체감하는 힘든 상황들은 분명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만, 확실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은가 생각된다.

우리가 힘들었을 때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 보면서
감사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게 보면 완적 막힌 보수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낙인찍히기 쉬운 이 시대
그래도 감사하다고 웃음 지어 보는 것은 어떨까?

AND

학력 부풀리기 또는 위조의 기사가 많이 나오는 이때이다.
물론, 거기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 잘못은 있겠지만,
사회적인 잘못도 분명 크다.
실력보다도 그 사람의 간판을 보며 판단하려는 사회.
참... 별로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사다, 선교사다 이런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는다.
그래서, 그런 타이틀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목회자의 삶을 살더라도
선교사적인 삶을 살더라도 뭔가 자유하지 못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가르치기에 능한 사람도
한국 기독교 사회에서는 어느 교단 출신이냐 어느 신대원 출신이냐를 먼저 따진다.
그 이후에야 그 사람은 인정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무시 당하게 된다.

어떤 운동에서는 각 가지 사회 영역에서 선교사라는 용어를 쓴다.
통일 분야에서 헌신할 사람은 통일 선교사, 직장 생활에서는 직장 선교사 등등...
이런 용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
내적으로 그런 한국 기독인들의 압박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 기독인들이
풀타임으로 헌신하고 전임으로 사역하면 신앙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안 좋다는 그런 사고 방식에 사로 잡혀 있다.

지금 현재,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을텐데.
믿으면 믿을 수록 사회적인 관습이나 시선들에
얽매어져 자유가 없어지는 비극은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이름을 날리기 보다는
묵묵히 살아서 숨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길 원한다.

나 자신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그런 면들이 가슴 아프다.
AND

오늘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어떤 이상적인 것을 설정하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갖다 맞추는 경향들이 많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고 힘없는 사람들을 돌아보신다 이런 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모든지 이런 틀에 맞춰 하나님을 바라본다.
말씀을 봐도 다 그런 틀에 맞춰서 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지나치게 강해, 민족을 향한 사랑과 민족을 위한 쪽으로 치중하게 되고 그에 따라 말씀을 또한 해석한다.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여성신학이니 토착화 신학이니 이런 종류의 용어들이 정말 많다.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나쁘게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 틀안에 갇혀서 자신의 이상에다가 하나님을 갖다 붙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틀안에 신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갖다 붙히는 일을 범하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을 겸손한 마음으로 알아가는 것
난 이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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