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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2 Passion of Christ 다른 면에서 보기.
  2. 2007.07.11 from India.
  3. 2007.07.09 예수를 믿는 다는 것
  4. 2007.07.04 SBS당시 성경을 읽으면서
  5. 2007.07.04 마태복음을 통해 본 예수님의 전도방법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화제를 주었고 감동을 주었던 영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는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고통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느끼라는 취지의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정말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신앙의 회복등 긍정적인 측면을 주었지만, 난 다른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 또한 많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영화의 목적이나 시간상의 제한으로 인하여, 예수의 고난 측면에 초점을 맞추게 된 부분인데, 그럼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측면을 소홀히 하였다.
사실,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 및 세상에서의 태어남과 사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부터 부활까지 이르는 것이며 결국은 영광스러운 부활 생명, 영생에 대한 부분으로 하이라이트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 부분을 다루는 데는 미약했다.
즉, 우리에게 눈물을 짜내기는 했지만 웃음은 거둬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SBS(School of Biblical Studies)에서 공부할 때, 4복음서에 대해서 성경을 그대로 읽어가며 영화가 전개되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 따라서 다양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참 유머와 웃음이 넘치고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다가갓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었던 복음서의 영화였다.(어떤 복음서에 대한 비디오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SBS direacror도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였다.
달라스 윌라드 이야기를 어쩌다 많이 하게 되는데, 그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웃음에 대해 이런 말을 적어 놓았다.
 
"(초략) 웃음은 진정한 공동체에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웃음이 건강에 그토록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웃음은 구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피조 세계에서 구속보다 더 큰 부조화는 없기 때문이다. 구속이 이를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126:1-2)"
그리고 예수에 대해 말하기를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세간에 굳어진 예수의 이미지는 그분이 재미있고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분임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한다. 복음서 도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분께 보인 반응을 보면 그 이미지가 완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분은 당대 지도자들이 인기를 시기하여 죽일 만큼(마27:18) 매력 있는 사람이요 강력한 연사였다. 그분은 유머의 대가이셨고, 여느 훌륭한 연사와 다를 바 없이 듣는 이들이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머를 즐겨 사용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파티의 손님 목록에 그분을 올릴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예수를 지식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만큼 함께 지내기 즐거운 명랑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복있는 사람 펴냄, 324p.]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또한 많은 믿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의 열정과 그들의 사명감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아마도 많은 환경의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을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성만찬 예식을 할 때 분위기는 교회사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즐거움 속에서 성만찬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부활에의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생명, 그리그 그 풍성함, 천국의 기쁨등이 그 안에 넘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그 즐거움이 그들의 얼굴속에 가능한가? 또한 나의 얼굴속에 가득한가?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다는 말이 이웃 사랑과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제자화 하고 변화시킨다는 것과 대치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의 부조리나 이웃에 대한 소외 현상등을 고치려고 하는 어떤 기독인들의 모습에는 그 문제에 대한 무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그 영역들을 제자화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기쁨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넘쳐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잔혹사에 초점을 맞추는 형식의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우울하다. 어둡다. 무엇인가 그들을 얽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신 것이 그토록 원하셨던 우리를 향한 생명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어도 아마 우리들을 향해서는 이 세상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기쁨과 평안을 원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 불균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되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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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India.

God follower 2007. 7. 11. 15:34

It's from india.
I want you to pray for my friends' task to save more baby girls' life with the help of Holy Spirit.
And they need financial things so it would be better to pray the flowing of financial stuffs well.
whenever I hear God's doing through their sacrifices for saving life, I thank God and them.
they are really God's cooperators for spreading God's kingdom in this world.
bless all guys who visit my web site!
have a great day in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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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one 4 days Baby Jenifer”
 
 

 Dear Friends…

Greetings in Jesus name, hope you all doing well, this is our privilege to let you know that we saved one more girl baby’s life, “Praise the Lord”

As you well know we are saving newborn girl babies from the death, some district people of Tamil Nadu, killing their girl babies as soon as born, they believe that the girl baby is curse to their family, previously we saved “Four  girl babies” yesterday we got one more lovely girl, now we have 5 babies. 

Great Story about this new Baby:

From 20th to 23 of June 2007 I was in a baby murdering village called “Andipatty” 95% of the village people are Hindu, most of the people are killing their girl babies, no one can ask them why! We got this 5 th baby in the same village.

When I preach with them, In Jesus name I rebuke and notify very boldly, baby murdering is a sin as well as against the law, if you kill a baby government will punish you, sometime you can hide from government, but you can’t hide from God, always he is watching you, all the children belongs to God. More than 65 people was listening me, end of the meeting one family invite us to their home and treat with some tea and snacks, they told: most of this village people don’t like girl babies, every month we can see many babies dying, your sharing was very useful to us, from today I will talk to the people when they trying to kill the baby. Really I was so happy from them and return to my home. I leave my mobile number with them.

The same day night one family had a girl baby, according to their belief, if a girl baby born within June 17 to July 17, it not fit to their family and God, (read more) in Tamil that month call Aady, last year we got two babies in the same month (Grace and Angeline) both are doing well and growing fast “Praise the Lord” by the way, this couple was thinking to kill the baby, wife told: already we have two girls, so we no need one more girl,  also this baby born in “Aady” month, we kill her, but her husband told: before I come to the hospital one man came to our village and preached the baby murdering is sin, if you don’t want girl baby give to us, but do not kill, we can give to him, both decided and the next day morning the husband came to family where we had tea and snacks, he told we want to give our baby to that man who preached yesterday evening “Praise the Lord” that family called me and told everything,

After I come from the meeting, I had some dysentery, I was really sick, because too much travel without rest, Kumari also so busy with other 4 babies and really tired, we do not know what do! I asked him a favor, can you bring the baby to us for this time only, we are in very terrible situation, he told after an hour call me back, really we was praying and waiting for his phone call, as he told he called and told: we can’t bring in by bus or train, that is very hard, even we can’t get it, we hire a car and bring baby, you have to pay the bill, I agree and told them to hire a car and bring the baby safely, yesterday afternoon they reached our home with the baby, we paid 7,000 for car bill and paid 2,000 to that family, we value this precious baby more than money, she is so beauty and good health, just today we brought her to the hospital for the general checkup, she is alright.

We want to save many more babies lives like this, we urge you to keep us in your prayer, we have lots of financial needs, God has to  strengthen our financial status. Thanks for spent to your valuable time to go through this large mail, looking forward to hear from you…  

We love you and praying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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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love in Him, Russal-Kumari & Kids.




1-Grace 2-Angeline 3-Erika 4-Kelsey 5-Jeni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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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목사님을 본 적이 있는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잡아두고 그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라고 강요하여 고백을 이끌어냈고, 그러면서 이제 당신은 영생 받았으니 기뻐하라고 말하는 분을 보았다. 난 그 주변에 있으면서 그 강요당한 사람의 찡그리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 주어지는 그 영광스러운 자리인가?

오늘날,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기독교를 무례한 하나의 단순한 종교로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기독교인화된 사람들의 변화되지 않은 즉, 중생(regeneration)되지 않은, 도덕적으로 문제있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기독교인들을 양성해 왔는지 모른다.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영생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요한복음 17:3절(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이 유일하다면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의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믿는 다는 고백이 아니라,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맺는 관계이며, 삶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영생이다. 영생이라는 것은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나 또한 있다고 심증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영생을 사실 너무도 단순화 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처럼 공식화하여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삶 속에서나 사회적으로 어떤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아도 믿으니까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왜냐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것이 곧 영생을 통행증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 개념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스 윌라드는 이런 개념을 거부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영생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사실, 예수를 믿는 다고 이야기할 때, 성경에서는 예수를 성도들의 신랑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성도들을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혼의 관계와 같이 예수와 성도들의 관계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 서약을 할 때, 신부측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랑을 믿고 따르며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취지의 서약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주로 영접하기로 한 사람들은 단순히 예수를 주로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고백보다는(물론, 진심이 담겨 있는 고백이라면 상관없다.)
예수를 주로 따르기로 고백하십니까?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따르시겠습니까? 또한, 예수가 보여주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따르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따른 고백이 더욱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AND

성경의 문자적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SBS에서 성경을 공부할 때(SBS는 주석보다 inductive method를 사용하여 성경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성령의 계시하심과 context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한다.) 성경을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그 때 당시 느꼈던 점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성경이 놀라운 것은, 성경에는 바르다고 생각되는 것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실수나 죄악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고, 심지어, 믿음의 조상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죄악상들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성경은 솔직한 책이며, 가식을 거부한다. 또한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성경이 원래부터 완벽함을 추구했다면, 믿음의 조상들의 실패적인 모습이 기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내용에 대한 부분(part)의 인간적 실수나 부족함들이 용납되지만, 왜 기록상에 있어서 실수나 부족함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서 포장하질 않으신다. 있는 그대로 보시며 있는 그대로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으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다.

성경을 기록했던 성경 기자들은 어떠할까?
만약, 성경이 문자적으로 절대적으로 무오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의 잘 통제받는 존재로, 자유를 부여하지 않은 하나님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성경에는 분명, 실수적인 문자의 기록들이 있다. (여러 요인에 의해 문자가 잘못 기록되어 있을 수 있다. 알다시피, 성경은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서 형성되어 온 것이지, 이것이 성경이라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나타난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심(실수조차도, 부족함조차도 사용하심), 동역자로 삼으심등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은혜를 보여준다.

성경에 실수적인 기록들이 있다고 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등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 기자의 기록과정에서 문자의 실수적인 부분들이 하나님의 신성을 손상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은 성경 기자를 로보트처럼 만들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어야 한다라고 전제를 만들어 하나님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또한 제한할 수 있다.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행하심은 오류가 없다.
그러나, 성경 자체의 문자적 표현들에 대해서 오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다소 위험한 표현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그 정확한 의미를 어떤 문자에도 정확히 담아낼 수 있을까? 문자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표현이다.
나 조차도 나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이 한국말의 단어로 정확히 표현될 수 없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경의 문자적 오류가 전혀 없다고 사용하고 싶은 심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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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다가 내 안에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적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기로 결심하였다.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위로가 있으며 평안과 기쁨이 있다.
물론, 삶이란 그리 쉽지 않다.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움들이 많이 있고, 내 머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들도 많이 있다. 물론, 내 마음 속에는 그런 어려움들이 해결되길 솔직히 원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서 이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될까?
예수만이 오직 유일한 위로시며 영원한 소망되신다.
그렇다면 이 영원한 위로와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거리에 나가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전한다.
어떤 사람은 과격하게 전한다.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몇몇 사람들을 지하철에서 볼때, 거리에서 볼 때, 어찌 보면 무섭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비단, 그런 구호를 외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예수를 전하는 데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쳐다 보는 눈빛이 너 그렇게 살면 안돼. 너 지옥의 길로 가고 있어 뭐 이런 식의 내재된 협박이 느껴진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제한이 없다. 그런 사람들을 꼭 잘 못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싫다. 내가 평가하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좌우지간, 이런 생각들이 예수를 떠올리게 했으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믿도록 전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마태복음을 쭉 넘기면서 살펴봤는데,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증거했던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에 대한 메세지였다.
이 메세지의 어감은 어떠했을까?


너희 회개 안하면 다 멸망할꺼야 이런 식의 메세지였을까?

4:23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4:24

뒷 구절들을 살펴 봤을 때, 나는 쉽게 예수님의 메세지의 초점을 잡을 수 있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에 대한 메세지의 강조점은 뒷 부분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천국이란 어떤 것인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이 고쳐지는 그런 것에 관련되어 있다. 23절...

즉, 예수님의 메세지는 세상에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에 고통받고 힘들어 하던 사람들에게 위로함을 주는 메세지였던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게 예수님이 전하셨을 것 같다.

 
세상 가운데 어려움과 고통들, 병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여러분들. 이제는 더이상 여러분들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영들에서 벗어나고, 회개하여 내게로 오십시요. 여러분들은 이제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안에 있는 힘듬과 어려움들이 내게 나누어질 때, 나는 여러분들의 약함들을 고칠 것이고 천국의 소망을 줄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나아왔을 때도
예수님은 8:3절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셨다.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생할 때,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8:7
세리와 죄인들이 왔을 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 것처럼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9:12,13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의 옷을 만지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딸아 안심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9:22
특히, 예수님은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과격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 화 있을진저로 시작되는 부분들...
23장에 나온다. 그 대상은 누구냐면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약하고, 힘든 자들, 죄인들을 돌아보고 위로할 생각은 안 하고 정죄하고 자신들은 위선적인 행동을 보였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전도 언어는 바로 사랑의 언어이셨다.
힘들지? 내게 오렴. 내 딸아, 내 아들아. 괜찮다. 어려운 점들을 내게 말하렴 내가 고쳐주겠다.
이런 표현이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전도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주변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세상 가운데 많이 힘드시고 어려우시죠? 힘내십시요.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힘들고 어려운 점을 고쳐주실 겁니다. 예수님의 위로와 평안이 넘치길 기도하겠습니다.
아마, 이런 표현들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과격한 표현을 들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믿는 다고 하면서도 위선을 행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지 못하고 꾸짓는 사람들이다. ^^;;;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거꾸로 되어 있는 현실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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